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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asa Nonoha

湯朝 野花

   - - -   |   172cm   |   56kg   |   女   

거리감   /   외강내유   /   속 깊은

"유아사? 글쎄…… 일단 겉보기에 다가가기 힘들어 보이지 않아?"

 

유아사 노노하는 다가가기 힘든, 거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단은 소위 말하는 '착한 인상'이 아닌 외관에서 오는 느낌도 영향이 있긴 했지만, 노노하의 행동 자체가 낯선 사람이 다가가기에 힘든 느낌이었다. 같은 대학을 같은 시기에 다녔던 학생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노하의 이미지는 꼭 아래와 같았다.

 

우선 노노하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정말로 필요한 일만 하고 휑하니 사라져버리니 애초에 말을 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가 학교의 벤치 같은 데에 가만히 앉아있는가 싶으면 어딘지 모를 곳을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생각하는 게 말을 걸어달라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래도 그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간혹 노노하의 의견이 필요해서 누군가가 물으러 갈 때가 없진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노노하는 항상 이렇게 답했다.

 

"난 상관없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유아사는…… 사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리하여 유아사 노노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통 없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바깥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잘 조합해서 생각해보면, 두 가지의 가설을 세울 수 있었다.

 

 첫째. 노노하는 일단 의사소통이 되는 멀쩡한 사람이다. 노노하가 아주 이상한 사람이었더라면, 노노하는 꼭 필요한 일 조차도 하지 않고 내팽겨쳐버렸을 거고, 누군가 필요해서 물으러 오면 네 마음대로 하라는 말 조차도 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이 지점에서 노노하는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둘 뿐이라는 것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둘째. 그리고 그 거리를 두는 이유에는 바로 어떤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듯 어딘지 모를 곳을 바라볼 때면, 사연이 없지 않고서야 그러지 못 할 거란 확신이 드니까.

 

 간혹 그 '사연'이 궁금해서, 혹은 그냥 마음이 쓰여서, 어쩌면 외모에 이끌려서. 몇몇 사람들이 노노하에게 다가간 적도 있긴 한데, 유아사 노노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통 없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럴 때마다 노노하는 멀쩡하고 정중하게 웃으며 거절했으므로, 누구도 노노하와 가까워질 수 없었다. 이게 바로 22살이 된 유아사 노노하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이자 한계였다.

 

 그러니까, 22살의 유아사 노노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6년 전 아오하마의 아이들의 시선을 잠깐 빌려오도록 하자.

 

 "노노하 말이지? 노노하는 보기보다 부드러운 부분이 있지."

 

 유아사 노노하는 겉보기에는 단단해보이는 부분이 있어도, 사실 속은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노노하는 포스터를 붙이다가 싫다고 뛰쳐나간 친구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해 가면을 쓰고 모르는 사람인 척 말을 걸 수 있는 친구였고, 눈 앞에서 속사정을 조금 꺼낸 친구의 이야기를 모른 척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줄줄이 말을 늘어놓는 친구였다. 그것의 일부는 당시 같은 반 친구, 같은 반의 반장으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했다. 그러나 노노하가 마냥 책임감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테다. 

 

 결국 노노하는 기본적으로 속이 좀 부드러웠다는 소리가 된다. 고집을 세울 지언정 막무가내로 세우지 못 했고, 남을 칼 같이 외면하는 것은 노노하와 어울리지 않았고, 상대에게 뾰족한 어투로 말하는 것은 시비가 걸렸거나 장난조로 되받아칠 때가 전부였다. 

 

 ……이제 22살의 노노하의 이야기로 돌아오자. 그랬던 노노하가 6년의 시간을 거쳐 22살이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정중하게 웃으며 거리를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부분은 22살의 노노하를 꼭 속을 알 수 없는, 바깥이 단단하고 방어적인 사람처럼 본다. 하지만 하다 못해 '정중하게 웃으며' 거리를 두는 것을 보면 노노하의 부드러운 면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닐텐데, 왜일까. 아오하마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노노하라면 그 부드러운 면으로 어디에 가도 잘 말하고 잘 지냈을 것 같은데, 왜일까.

 

 이 또한 부드러운 면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부드러운 면은 그 성질 자체가 남을 해하기 어렵고 반대로 다치기는 쉽다. 그리고 다친 부드러운 면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는다면 바깥으로 꺼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노노하는 부드러운 면이 '무언가' 때문에 다쳐서 속에 감춰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부드러운 면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어서, 아주 조금씩 보이는 게 아닐까?

 

 어쩌면 부드러운 면이 들어간 자리를 메울 것을, 22살의 노노하는 '거리감'으로 택한 게 아닐까?

 

 "그리고 노노하는 여전히 속이 깊어."

 

  유아사 노노하의 부드러운 면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도 더 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속 깊은 면이다.

 

  22살의 노노하가 사람들과 대체로 거리를 두었기 때문에 노노하가 속이 깊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제 몇 남지 않았다. 노노하가 새로운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는 것은, 당연히 노노하가 사람들 앞에서 고집을 세우거나 책임을 지는 일도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으므로. 어쩌면…… 예전보다도 더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었으므로. 더더욱 누군가가 노노하의 속 깊은 면을 알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주 없지는 않았다. 노노하 본인은 그닥 인상깊은 일이 아니라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노노하는 아오하마를 떠나 정착한 지역의 옆집 아이가 길 잃은 것을 보고 집까지 데려다 준 적이 있었다. 아이가 무서워하거나 어색해하지 않도록 꾸준히 말을 걸어주고, 손을 잡고 옆집에 데려다 줬었다. 당신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 눈치챌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이 아는 16살 노노하의 속 깊은 면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노노하에게는 이것이 그닥 인상깊은 일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인상깊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아주 일상적인 일일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 노노하에게는 속 깊게 행동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었을까?

 

 그러니까 노노하를 잘 살펴보자. 노노하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예전처럼.

 여전히 속 깊게 행동하는 22살 유아사 노노하를 볼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여전히 결 좋은 연회색 머리칼이 허리는 가볍게 넘는 길이까지 내려온 것이 16살 이후 단 한 번도 자른 적 없는 듯한 모양새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머리가 긴 만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한 것은 그것만은 아니었다. 16살 유아사 노노하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 없었던 정갈한 반묶음과 맑고 연한 바닷빛 리본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노노하의 얼굴은 16살 이후 계절을 몇 번 반복하며 어른이라는 느낌이 강해졌지만 여전히 객관적으로 예쁜 편으로, '고고한 아가씨'같은 인상이었다. 화재의 후유증이 남지 않은 듯 깨끗한 흰 피부, 올라간 편의 눈썹과 냉정해 보이는 눈매, 맑고 연한 바닷빛 눈동자, 오똑한 편의 코와 다물린 입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으며, 맑고 연한 바닷빛 눈동자를 모티브로 한 액세사리는 목걸이와 귀걸이가 되었다는 점일 테다.

 

악세사리는 길거리에서 산 듯 진짜 금이나 보석은 아니었고, 멀리서 보면 몰라도 자세히 보면 조잡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노노하의 눈동자 색과 꼭 닮은 작은 인조보석이 박혀 있었다는 점으로, 귀걸이는 작은 보석을 두 개의 금색 원이 교차하며 감싸고 있는 형태였고, 목걸이는 평범하게 동그란 보석을 얇은 금테로 감싼 것이 금줄로 연결되어 있는 형태였다.

 

한편 22살의 여름을 맞이한 노노하는 당연하지만 더 이상 교복을 입을 나이가 아니었으므로. 노노하는 위에는 짙은 네이비 색의 민소매 목폴라티를 입고, 아래에는 벨트로 허리를 고정한 베이지 색 롱스커트를 입었다. 맨발을 감싸는 형태의, 금방이라도 해안가를 거닐어도 좋을 듯한 굽 있는 샌들은 16살 노노하가 신었던 검정 스니커즈와 양말의 자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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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의

 들꽃 

" 난 상관 없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

0. 생일과 이름의 의미

 

 유아사 노노하의 생일은 4월 24일, 탄생화는 제라늄으로 꽃말이 '결심'이다.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예전에는 좋아했던 것도 같지만…… 글쎄, 지금은 잘 모르겠네.

 이야기를 들은 지도 꽤 오래 됐으니까. 까먹어도 이상할 건 없지?

 

1. 화재 당시의 유아사 가족

 

 유아사 노노하의 가족과 유아사 노노하는 별다른 외상 없이 전부 살아 남았다.

 

 외상없이 온 가족이 전부 살아남은 것은 정말로 하늘이 도왔다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마 화재가 나기 얼마 전, 노노하네 부모님이 일찍이 마트 문을 닫았던 것부터가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년도의 관광객 수를 생각해 넉넉히 준비했는데도 예상보다 많은 관광객 수에 대부분의 재고가 일찍 동이 났기 때문이었다.

 

 재고가 일찍 동이 나자 더 이상 영업을 할 이유는 없었다. 마침 사랑하는 딸 유아사 노노하는 그날 불꽃놀이까지 보고 오면 집에 와서 꼭 뒷정리를 돕겠다고 했으니, 아직은 불꽃놀이를 할 해안가에 있을 터였다. 그래서 노노하네 부모님은 마트 문을 닫고 시가지를 벗어나, 아마 노노하가 있을 해안가로 가서 노노하를 깜짝 놀래켜줄까, 싶었는데…….

 

 그때, 화재가 났다. 한 가족이라 무언가 통하는 부분이 있었던 걸까. 노노하가 부모님이 있는 시가지 쪽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가, 매섭게 번지는 불을 보고 부모님은 괜찮을 것이라 믿으며 일단은 달리는 길을 택했듯 노노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유아사 가족은 화마가 아오하마를 삼켰을 때도 오래 남을 외상 없이 무사히 재회할 수 있었다. 

 

2. 화재 이후의 유아사 노노하

 

 유아사 노노하는 화재 직후에는 친척 집에 신세지다가, 노노하가 성인이 되었을 쯤 친척집 근처에 다시 작은 '유아사 마트'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는 것이 사는 것의 전부는 아니었다. 아오하마를 삼킨 불은 원래 '유아사 마트'도 삼켜서, 모두가 기억하는 '유아사 마트'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축제 때의 수입은 불이 다 잡아먹었는데 축제를 위해 대량주문했던 물품의 외상대금은 일부 밀려 있는 것도 문제였고, 모든 것을 차치하고 당장 잘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였다.

 

 어쩔 수 없었다. 유아사네 가족은 아오하마 근처 지역의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당장 방학기간이 끝나면 낯선 지역의 낯선 학교에 낯선 교복으로 바꿔 입고 학교생활을 해야 할 노노하도 문제였지만, 노노하의 부모님은 더욱 바빴다. 노노하를 아끼고 사랑하는 부모님이라지만 바쁜 현실 앞에 당할 자는 누구도 없었다.

 

 노노하의 부모님은 여전히 노노하를 아끼고 사랑했으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없었다. 노노하의 아빠는 더 이상 아침마다 노노하의 머리를 빗고 정갈하게 반묶음해서 노노하의 눈색을 닮은 리본으로 매듭지어주지 않았고, 노노하의 엄마는 맑고 연한 바닷빛 리본 두 종류를 노노하에게 매년 새것으로 선물해줄 여유가 없었다.

 

 그때부터 노노하에게서 맑고 연한 바닷빛 리본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부모님이 보기에 노노하는 괜찮은 것 같았다. 나이를 먹었으니까 어른의 사정도 조금은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여유가 생기면, 다시 머리를 빗어서 묶어주고 생일 선물을 챙겨주자. 

 

 노노하가 성인이 될 쯤엔 여유가 생겼다.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여태껏 쌓아온 사람간의 인연이 도움을 보태 다시 작은 자리에서나마 '유아사 마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노노하의 부모님은 노노하에게 노노하의 눈색을 꼭 닮은 귀걸이와 목걸이를 생일선물로 주었다. 노노하는 선물을 받고 웃으며 말했다.

 

 "이제 나도 어른이니까 더 이상 생일선물은 챙겨주지 않아도 돼." 

 

 그 이후로 노노하는 생일 선물을 받지 않았다.

 노노하의 머리를 빗고 묶는 것은 아주 예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3. 22살의 유아사 노노하

 

 나중에 크면 유아사 마트의 주인이 될 거라고 말하던 유아사 노노하는 뜬금없이 대학을 진학했다. 현재 휴학중이다.

 

 더 배우면 나중에 유아사 마트를 물려 받을 때 도움이 될 거라는 게 일단은 이유였다. 빈말은 아니었는지 고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에는 바짝 공부를 해서 근처 대학의 상경계열 학과에 합격했다. 노노하의 부모님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한창 좋은 기억만 쌓아야 할 학창시절에 함께 하던 친구들이 화재에 휩쓸리고 낯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도, 먹고 살기가 바빠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 했던 아이다. 그런 아이가 원한다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노노하가 원했다는 것치고는 노노하는 학교생활에 영 미적지근한 것처럼 보였다. 공부를 하는 건 둘째치고, 하여간 대학 가길 원했다는 사람이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그 생각이 사실이었던 걸까. 노노하는 결국 2년을 다니고 22살부터 휴학 중이다. 휴학한 지 반 년이 넘어가는 지금, 노노하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끔 부모님이 걱정하는 마음에 예전처럼 유아사 마트의 카운터를 보라고 말할 때도, 그 때에만 잠깐 일어나 카운터를 볼 뿐.

 

노노하가 자발적으로 유아사 마트의 일을 본 적은, 16살의 축제 때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4. 여전히 불분명한 호불호, 그리고……

 

 대학생활을 원하는 것 같지도 않고, 유아사 마트를 원하는 것 같지도 않은 유아사 노노하는 여전히 호불호가 불분명했다.

 

 무엇이 좋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싫냐고 물으면 딱히.

 그래서 무엇을 바라냐고 물으면 또 자신은 상관없으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러다 한 번은, 누군가가 "유아사는 정말 좋아하는 게 없어?"라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것을 물어본 누군가는 노노하가 약간 움찔하면서 드물게 깊게 고민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던 내용을 기억한다.

 

 "있었는데 이제 못 가고 못 보거든. 그래서 아마 말해도 의미 없을 거야."

 

5. 소지품

 

맑고 연한 바닷빛 리본 두 종류, 하얀색의 작은 꽃 비녀, 나비 머리핀, 펴보지 않아 구깃한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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